희극적
사고로 읽는
시각디자인 방법론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좋은 어긋남을
중심으로
희극적
사고로 읽는
시각디자인 방법론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좋은 어긋남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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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위트’는 비슷해 보이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된다. 유머는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희극적 방법이라면, 위트는 익숙한 틀을 비트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참고문헌은 유머와 위트 사이를 가로지르며 작업하는 디자이너의 태도와 방식에 관심을 둔다. 정해진 답이 없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반복되는 디자인 과정에서 재치있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작업 과정 속의 유머를 발견하고 연구자의 위트는 어떻게 창의적인 전략으로 전환되는지를 살펴본다.




☻. 웃음이 필요해
☻-☺.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재미’라는 단어보다 더 흥미로운 말은 드물다. “그 만화 재미있니?” “재미있는 영화” “재미있게 놀자.” “그 친구는 요즘 신혼 재미에 푹 빠져 있어.” “산속에서 재미삼아 옷을 감추었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다.” “네가 떠나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살지?” “나는 부업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요즘 재미는 좀 어때?” 이렇게 ‘재미’라는 단어에는 다양한 숨은 뜻이 담겨 있다. 재미는 흥미, 이익, 익숙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재미의 다양한 의미는 재미를 생산할 때 아이디어의 근간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욕망은 행동 방식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유희 충동이라고 한다. 유희 충동은 놀이를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된다. 충동을 만족시키려면 어떤 일이나 활동을 해야 하고, 그 활동의 결과가 에너지가 된다. 즉 유희 충동을 만족시키려면 취미 활동이나 창작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의 결과로 재미라는 긍정적인 심리를 동반한 에너지를 얻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 교육 분야에서도 재미에 초점을 둔 연구로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의 연구가 있는데, 재미는 동기를 부여하고, 재미에 기반을 둔 교육이 노력에 기반을 둔 교육보다 효과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재미와 관련한 창의적 성취를 연구한 결과 가운데 칙센트미하이의 연구는 교육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노벨상 수상자나 성공적인 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보면, 자기 영역의 일을 마치 놀이처럼 즐거워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디자인 유머』, p.22-25)

이 발췌는 디자인에 있어 ‘재미’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창작의 동력임을 강조한다. ‘재미’는 생산성, 몰입, 집중력처럼 이성적 도구로 포장되지 않지만, 실은 디자이너가 끝까지 손을 놓지 않게 만드는 창작의 본능적 기반이다. ‘유희 충동’이라는 개념은 디자인이 그 자체로 놀이이며, 그 놀이 안에서 얻는 감정적 에너지가 지속 가능한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장은 유머와 위트의 존재론적 출발점을 설정한다. 디자이너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아니라, 재미를 감각하고 구성하는 자로서 어떤 충동을 지니는가에 대해 묻는 첫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이후, 위트와 유머가 어떻게 그 충동을 조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지를 설명하는 기초가 된다.

☻-☺☺. 디자인에서의 위트와 유머

위트/기지/재치는 유머/코미디와는 다른 개념이다. 유머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희극이라면 위트는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반짝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트는 다분히 작품 속에서 ‘최소한의 형태’ 로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 낸다. ... 나는 하나의 디자인에 함유된 ‘웃음의 정도’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디자인에 있어 위트는 아주 작은 구상의 방식, 표현, 심지어 통상적으로 쓰여 왔던 후가공 한 가지의 변형에서도 생길 수 있다. 로사리오 플로리오의 책갈피처럼 서체의 의미를 변형하고 운용하는 일은 작은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 파장과 생명력은 매체 하나를 살릴 정도로 거대하다. 이제 나는 사소한 위트가 불러오는 감정의 파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위트 그리고 디자인』, p.13)
그래픽 디자인은 항상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 그래픽 디자인들은 완성도 있고 정교한 결과물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 얽매이게 된다면 그래픽 디자인은 진부한 영역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급한 시각언어로 이루어진 ‘짤방’을 그래픽 디자인 속으로 들여오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픽 디자인은 좋은 취향과 완성도를 요구하긴 하지만 시각적인 새로움 또한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잉여로운 산물』, p.36)

해당 목차는 ‘유희 충동’이라는 내적 동력을 이어받아, 그것이 어떻게 시각적 언어와 표현 전략으로 구체화 되는지를 보여준다. 위트와 유머는 단지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짤방과 같은 저급하거나 비정형적인 언어를 끌어와 기존의 문법을 어긋나게 만든다. 특히 위트는 ‘반짝임’처럼 짧고 예민한 순간에 발생한다. 그것은 규칙에서 살짝 비껴나간 작은 실수이기도 하고, 지적으로 판별되는 ‘다른 감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는 ☺-☺의 ‘왜 재미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 재미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형 감각과 전략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이다.



☻☻. 무의식적으로 작업하기
☻☻-☺. 어지르는 것도 전략이다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면, 작업 과정에서 요소들을 어지르고 정리하는 것은 종종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동이다. 이 판단은 대개 현재 이미지를 만들었던 과정이나, 이미지가 갖는 성질과 반대로 향한다. 경험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상치 않았던 결과물을 발견한다’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행동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목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더라도 느슨한 지점을 만듦으로써 우연을 끌어들여 예측하지 못한 방법이나 이미지를 맞닥뜨린다. 책 <멀티플 시그니처>의 ‘산출물이 뭔가요?(What’s your deliverable?)2’에서 마이클 록(Michael Rock)3은 “생각하는 ‘한편’ 만드는 쪽이 있는가 하면, 만들기를 ‘통해’ 생각하는 쪽도 있다”며 “디자이너의 생활에서는 본디 비이성적인 우연이 언뜻 조리 있어 보이는 틀에 불완전하게 주입되는 과정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제작 의도와 목적이 자유로운 작업을 할 때는 느슨한 계획을 세우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작업을 이어간다. (『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 p.111-114)

위 발췌는 위트가 반드시 논리적 사고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시에 디자인 과정에서의 ‘계획되지 않음’이 오히려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는 때로 질서를 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다시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지르기도 한다. 작업자에게 있어서 어수선한 상태란 실패 혹은 오류가 아니라, 우연을 끌어들이는 준비다. 마이클 록의 말처럼, ‘생각하는 동시에 만드는 사람’은, 위트를 논리로 조립하기보다 불완전한 선택들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발명한다. 이 지점은 위트가 반드시 계산된 조형 언어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반복적 실패, 즉흥성, 예기치 않은 판단이 만들어내는 작은 틈에서 위트는 조용히 발생한다. 이 파트는 이후 ‘무의식’, ‘감정’, ‘감각’으로 이어질 흐름의 문을 여는 지점이다.

☻☻-☺☺. 꿈, 무의식, 농담

농담은 연상 면에서도 독특한 행동 양식을 보여 준다. 원할 때는 잘 떠오르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에 원하지 않아도 불쑥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연관성을 알지 못하는 사고 과정의 몇몇 지점들에서 말이다. 이것은 사소한 특징일 뿐이지만, 어쨌든 농담의 뿌리가 무의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 무의식적 집중은 표현을 선택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더구나 우리는 언어적 즐거움의 획득 가능성을 담은 그 표현이 무의식적 의도가 그랬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전의식적 사고 표면에 대해 끌어내리는 작용을 한다고 즉각 가정할 수 있다. 조금 단순한 익살의 경우엔, 언제든 언어적 즐거움을 얻을 기회만 노리는 의도가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도식에 따라 에너지 집중 과정을 재차 무의식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방금 전의식 속에 주어진 계기를 이용한다고 생각해도 된다. (『농담과 무의식』, p.85, 92-93)

이 문헌은 디자인과 무관해 보이지만, 위트가 어떻게 언어 외부에서 튀어나오는가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농담은 사고의 결과물이 아니라, 때로 의식이 끊긴 틈에서 툭 튀어나오는 어떠한 기호다. 디자이너 역시 농담처럼 생각한다. 2-1에서의 작업적 즉흥성과 연결된다.

☻☻-☺☺☺. 어색하고 긴장되게

디자이너 듀오 최슬기와 최성민은 창작 과정에서 시각적 레퍼런스나 스케치보다는 언어와 개념에 중점을 둔다. 그들은 작업을 직관이나 감각에 의존하기보다 개념적 분석을 통해 전개한다고 말한다. 작업 과정은 “주어진 과제를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한 뒤 시각화하는” 단순한 구조지만, 시각 이미지보다 언어적 개념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비애티튜드매거진, 2024).
창작 과정은 흔히 두 가지 축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시인 에이미 로웰과 화가 막스 에른스트가 주장한 무의식적 창작 방식이며, 이는 아이디어의 출현과 전개가 전적으로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주장처럼 논리적, 계산적인 의식적 사고에 기반한 방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창작자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문제의 발견–인큐베이션–해결이라는 단계를 따른다 (『Proses Kreasi Seorang Desainer Grafis』, p.71).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격언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문자적 의미에만 갇히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항상 나에게 돌아온다”는 격언을 양파링 형태로 시각화했는데, 이는 개인적인 기억이나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격언의 직설적 메시지에 시각적 불투명성을 더함으로써, 관객이 해석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Proses Kreasi Seorang Desainer Grafis』, p.76-77).

슬기와 민은 창작에서 ‘일은 명료하게, 재미는 모호하게’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어색함과 긴장, 모순이 공존하는 디자인을 원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위트가 감각적으로 해석되며, 때로는 불편하거나 어색할수록 더 오래 남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이들의 위트는 말장난처럼 장식되지 않으며, 대신 작업 전체에 스며든 톤과 감정적 공기 속에 배치된다. 사그마이스터의 ‘양파링 격언’은 의도적으로 불투명하고, 직설적인 메시지와 어긋나는 비유적 조형을 통해 관람자의 해석을 유도한다. 이 구조는 디자이너가 작업의 통제권을 완전히 쥐지 않고, 관객과의 거리에서 생기는 오해와 해석 가능성을 창의 전략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두 작업자의 태도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희극적 사고’란 통제 밖에 있는 의도/무의도, 개념/감각, 전략/감성을 가로지르는 범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웃기지도 않은데 웃긴
☻☻☻-☺. 웃겨 안 웃겨?

보통 코믹과 코미디는 ‘우스운 것’ 혹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웃음을 코미디와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웃음은 유머와 코믹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간지럼, 웃음가스(산화질소), 클레인 레빈 증후군 등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다. 이것들 외에도 사람이 웃는 이유는 다양하며 그 이유가 다양한 만큼 웃음의 성격도 다양하다.
... 희극적 장치가 작가나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작동해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경우, 의도하지 않았으나 희극적으로 보여지는 경우, 희극적 효과를 창출하는 장치를 사용했으나 그것이 웃음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는 경우, 이 중에서 어떤것은 성공적이고 어떤것은 실패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이 웃기냐 웃기지 않느냐 하는 판단의 기준은 절대적으로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폭소를 이끌어냈는가 혹은 그들이 마음 속으로 아주 작은 미소만을 지었을 뿐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픽 디자인이 창출하는 웃음 중 대부분은 실소일 것이다. 물론 어떤 작품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웃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웃음을 그 작업이 희극성을 띄고 있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희극(적)장치』, p.6, 19, 21)
“웃음은 유머와 코믹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 유머』 중에서)

해당 목차의 문헌들은 유머와 위트가 언제나 성공하거나 기대한 반응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웃음을 유도하는 시각적 장치들이 디자인에서 사용되지만, 그것이 진짜 웃음을 유발할지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정교하게 위트를 장치하더라도, 그것이 박장대소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단순한 실소로 지나칠 수도 있으며, 혹은 전혀 반응 없이 지나칠 수도 있다. 위트는 감정적 반응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질문을 건네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웃기지 않은 위트, 실패한 농담, 너무 미묘해서 해석조차 되지 않는 장면들도 디자인 속에서 어색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웃기지 않은데 웃긴 것, 웃기려고 했지만 실패한 것, 실소만 유도하는 것 등 이러한 불확정성과 실패 가능성은 위트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디자인의 개입 방식’이자 ‘질문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앞선 장에서 다룬 비의도성의 연장선상이다.

☻☻☻-☺☺. 우리는 언제 웃는가

그림. 커뮤니케이션 수렴 모델(Rogers and Kincaid, 1981 인용)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메시지 교환의 순환과정에서 공유를 함으로써 상호이해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A는 B와 정보(I1)를 공유하려는 의도로 전달하며 B는 그것을 받아들 여 해석하고 반응(I2)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상호이해의 정도가 확실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되며 양자 간에 도달된 이해의 정도가 공유영역(그림에서 A와 B가 겹치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로저스(1986)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구조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 상호 관계의 차이점(differences)과 유사성(similarities) 및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제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가운데 중요하지 않거나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은 관심이 낮아지면서 자연히 누락되며, 제작자와 수용자가 서로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핵심이 남는 것을 분석할 수 있다. ... 공유된 메시지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경험으로 누적되어 가면서 사회와 문화 속으로 하나의 코드(code)처럼 정착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하게 창조된 산물들을 삶 속에서 예술적 경험을 하되 개별적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공감을 형성해야만 완전한 내면화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발췌는 ‘위트의 유효성’이 수용자와의 관계에서만 성립한다는 점을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메시지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 순환과 공유를 통해 해석되고 고정된다. 이 말은 위트 역시 한 번의 ‘빵 터짐’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정착되거나 실패하거나, 오해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위트는 일방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수용자의 해석, 경험, 감정, 배경 안에서 구성되는 열린 텍스트로 만든다. 같은 장치를 보고 웃는 사람과 웃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고, 웃더라도 그 맥락이 다르며, 그 차이는 결국 디자이너가 통제할 수 없다. 디자이너의 위트는 결국 수용자와의 거리를 감안해 설계되어야 하며, 그것이 창의적 전략으로서 성공하려면 해석의 여백을 확보한 채로 설득력 있게 배치되어야 한다.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의 수용 과정과 공유에 관한 연구』, p.61-64)

☻☻☻-☺☺☺. 농담의 책임

부도덕하지만 재미있는 농담들은 많이 있으며 농담 속에 포함된 도덕적이지 않은 것들로 인해 우리가 우스운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은 농담 속에 존재하는 도덕적으로 나쁜 것들에 대해 종종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이는 분명 농담의 메시지에 대한 오해와는 다른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농담-청자가 농담-화자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 농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해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담을 듣는 사람은 농담-화자의 정황언어와 맥락을 고려해 농담의 의미를 파악할 때 비로소 농담을 매개로 하는 소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모든 농담이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농담-화자는 때때로 자신의 농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농담이잖아’와 같은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이오의 지적처럼 그러한 농담-화자는 종종 자신의 농담이 진지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데 농담-화자 스스로 그들의 농담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이는 매우 모순적이게 보인다. 따라서 농담을 단순히 우스운 즐거움을 주는 것, 혹은 유머나 위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농담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것은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부도덕한 소재를 인지했음에도 ‘재미있으니까’, ‘농담이니까’ 등으로 가볍게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농담에 등장하는 고정관념이 현실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농담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머와 위트 개념에 집중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농담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농담과 연관성이 높은 개념에 집중하는 것보다 농담이라는 매체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농담 연구를 위한 매체적 접근의 필요성: 유머와 위트의 개념을 중심으로』, p.883-885)

이 장은 위트와 유머가 단순히 ‘웃기면 성공’인 장르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되고 비판될 수 있는 언어 행위라는 점을 일깨운다. 특히 농담은 수용자의 오해나 불쾌함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 이후에도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회피 불가능한 윤리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유머나 위트를 사용할 때, 그것은 작업의 일부가 아니라 ‘태도’이며, 결국 그 태도는 반응과 비판을 전제하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위트가 항상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며, 수용자에 따라 불편함과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유머나 농담을 사용할 때는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 맥락, 수용자의 태도를 함께 고려해야 하며, 단순히 “농담이잖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책임 윤리를 제기한다. 이 발췌는 논문 전체의 맥락을 현실 세계로 다시 끌어오며, 위트를 창작 도구이자 사회적 발화로서 책임져야 하는 미적 장치로 자리매김한다.



☻☻☻☻. 맺음말

디자인에 있어서 유머와 위트는 단순한 ‘재미’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비트는 방식이며, 관습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도구이다.

본 연구는 위트와 유머를 통해 디자이너가 정답이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감정, 실수, 우연, 실패까지도 창의적 자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탐색했다. 디자이너는 어긋남과 어색함, 혹은 미완의 감정을 피하는 대신 일부러 느슨하게 계획하거나, 때때로 무의식에 기댄 판단, 혹은 해석이 열려 있는 구조를 통해 기분 좋은 이상함을 설계한다.

또한 이는 단순히 위트와 유머의 개념을 구분하거나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헌과 사례 발췌를 반복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디자인 사고의 비선형성과 감각적 흐름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정리된 논리보다, 조금 이상하고 비틀린 연결들 속에서 사고의 진폭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결국 이 참고문헌이 다루는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 좋은 어긋남’이라는 개념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재구성하고 의외성으로 반응하는 창의적 자세는 무엇인가?” “통하지 않아도 우연히 웃음을 만드는 실수가 창의가 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위트와 유머라는 미묘한 장치들에서 찾아보고자 한 것이 이 연구의 본질이다.






단행본

  • 이로, 강구룡. (2013). 위트 그리고 디자인. 지콜론북.
  • 박영원. (2013). 디자인 유머. 안그라픽스.
  • Sigmund Freud. (2010). 농담과 무의식의 경계. 열린책들.

  • 논문

  • 김나래. (2015). 잉여로운 산물.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01-101.
  • 김병민. (2022). 농담 연구를 위한 매체적 접근의 필요성: 유머와 위트의 개념을 중심으로. 부경대학교인문사회과학연구, 23(2), 879-885.
  • 이수진. (2009).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의 수용 과정과 공유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박사학위논문, 61-64.
  • 양으뜸. (2014). 희극(적) 장치 : 그래픽 디자인과 코미디와의 관계. 서울시립대학교석사학위논문 , 5-21.
  • 정사록. (2021). 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 서울시립대학교석사학위논문 , 109-114.
  • Rini Maulina. (2012). Proses Kreasi Seorang Desainer Grafis (Studi Kasus : Stefan Sagmeister). CrossRef, 4(1), 66-85.

  • 인터뷰

  • 비애티튜드매거진. (2024, 11월 3일). 자연스럽게 이상한, 또는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슬기와민과의 인터뷰]. 디자인저널.